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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마감재도 난연시험 면제?…시장 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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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10-13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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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경제=김태형 기자] #지난 2003년 2월 18일 오전 10시,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 정차한 전동차 안에서 방화로 큰 불이 났다. 수 초만에 반대편에 정차한 전동차로 불길이 번졌고 역사 안은 순식간에 화염과 연기로 가득찼다. 이 사고로 지하철 객차 전량이 불에 타면서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를 계기로 불에 잘 타는 우레탄폼 의자, PVC(폴리염화비닐) 바닥, 폴리에틸렌 단열재 등 전동차 내장재를 불연성 소재로 전면 교체했고, 역사 내장재의 불연 기준도 대폭 높였다.



대구 지하철 참사 20주기를 맞아 지하철 역사의 마감재가 화재와 유독가스 사고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건축물 마감재에 대한 난연 성능 시험요건을 완화하는 과정에서 콘크리트, 철, 알루미늄처럼 불에 잘 타지 않는 재료에 얇게 도장(코팅)한 제품의 시험면제 조건을 신설했는데, 자칫 난연성이 없는 도장을 덧칠한 내장재가 유통될 경우 화재로 인한 대규모 참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8월 ‘건축물의 피난ㆍ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건축물방화구조규칙)을 개정하면서 ‘불연재료에 0.1㎜ 이하의 두께로 도장을 한 재료의 경우에는 불연재료의 성능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보고 난연성능 시험을 생략할 수 있다’는 조항(24조 8항)을 신설했다.

콘크리트, 철, 알루미늄, 돌과 같은 당연 불연재료에 얇은 두께의 재료로 도장, 부착 등을 하는 경우에는 화재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만큼 해당 재료를 하나로 보고 난연성능 시험을 면제해주겠다는 것이다. 국내 건축물 내ㆍ외부 마감재의 도장 두께는 0.1㎜ 이하 제품이 대부분이다.

이 같은 규제 완화는 지난 2020년 4월 이천 물류창고 화재 등 대형사고를 계기로 한층 강화된 건축자재의 난연성능 시험기준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려는 조치다. 정부는 샌드위치 패널(강판과 심재로 이뤄진 복합자재)로 지은 건물의 화재사고가 잇따르자 마감재료가 둘 이상의 재료로 제작된 경우에는 해당 마감재료를 구성하는 각각의 재료에 대해 난연성능을 시험하도록 건축자재 기준을 강화했다.

문제는 난연성능 시험을 하려면 실제 시공될 건축물의 구조와 유사한 모형으로 시험(실물모형 시험)을 해야 하는데, 국내에 이런 대형시험시설을 갖춘 곳이 적다보니 시험 성적서 하나를 받는데만 6∼10개월씩 기다려야 했다. 이처럼 까다로운 난연성능 시험을 간소화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자, 건축물 마감재의 난연성능 시험을 합리적으로 바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새 규정의 적용 범위를 두고 혼선이 발생했다. 난연성능 시험 면제 대상에 내부와 외부 마감재가 모두 적용되는 것인지, 아니면 외부 마감재만 해당하는지를 놓고 관련 업계의 해석이 제각각이었다. 일부 제강사들은 난연도료가 아닌 일반 도장강판도 내ㆍ외장재에 모두 쓸 수 있게 됐다며 홍보하고 있다. 발주처도 내장재에 적용하는 도장강판의 난연성능 시험 성적서 제출을 두고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전문가들은 화재시 유독가스가 분산되는 외벽과 달리 환기가 어려운 내부의 마감재에는 엄격한 난연성능 검증절차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2021년 276명, 지난해 341명 등 여전히 해마다 수백명이 화재로 목숨을 잃었는데, 대부분 유독가스로 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4만1257건의 화재사고로 2286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사망자는 연기ㆍ유독가스를 흡입하고 화상까지 입은 경우가 40%로 가장 많았고, 연기ㆍ유독가스 흡입이 25% 순이었다. 부상자의 경우에도 화상이 46%, 연기ㆍ유독가스 흡입 31% 순이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수도권광역급행열차(GTX)처럼 지하 40∼50m 공간에 설치되는 지하철 승강장 대합실과 공항의 대형 대합실에 난연성능 시험을 생략한 마감재를 설치할 경우 대구지하철 참사보다 훨씬 심각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난연성능 시험 생략 범위를 외장 마감재로 명확히 제한하고, 내부 마감재에 대한 난연성능 시험은 유지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이번 규정 개정은 건축물 외벽에 적용되는 불연재 마감재에 제한된 것으로 유독가스 사고 우려가 있는 내부 마감재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면서, “일선 현장에서 규정 적용에 혼선이 발생할 경우 유권해석 등을 통해 이를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김태형 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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